백차의 솜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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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백차의 솜털에 대하여




이른 아침 창 밖 하이얀 설원이 보입니다.
따뜻한 온천에서 목욕을 막 마치고 온 것일까요.
거울을 보는 고마코의 볼은 붉습니다.
시리게 흰 눈과 발개진 뺨이 거울 속에서 대조됩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유명한 문장 못지 않게
제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에서 좋아하는 장면입니다. 


'눈의 여왕'은 얼음 같이 차가웠다는데,
이상하게 저는 눈이 오는 풍경을 떠올리면 

포근하고 상쾌해집니다.



하이얀 설원에 가루 같은 눈이 떨어지는 장면.
고마코의 아침 모습처럼
깨끗하고 뽀송뽀송한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이런 느낌엔

'백차'가 떠오릅니다.


백차(白茶, white tea)라는 이름 탓도 있겠지만

백차의 가장 큰 특징인 '하얀 솜털' 이
설국의 이미지를 연상시킵니다.

 

차나무의 어린 새싹은 

보송보송 하얀 솜털을 갖고 있습니다.

어린 동물이나 사람의 얼굴에 솜털이 있는 것과 비슷하지요.


찻잎에 난 이런 솜털을 '백호(pekoe)'라고 부릅니다.

서양에서는 'pekoe'가 고급차를 뜻하는 단어로도 쓰입니다.


백차 종류 중에서

백호은침(白濠銀針)은 

찻잎이 되기 전, 어린 새싹으로만 만듭니다.



백호은침은

하얀 솜털(백호)를 잘 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새싹이라 바늘같이 가느다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은침', 은색 바늘 같다는 이름입니다.

백차의 본고장은 중국 복건성인데요.

백호은침은 복건성 백차 중에서도 

가장 희귀한 새싹으로 만든 최고급차입니다.



요즘은 복건성 말고도, 

운남성의 백차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운남성은 보이차를 만드는 야생 차나무가 즐비한 곳입니다.

이곳에서 난 백차들은 그래서인지 더 야생적인 특징을 띕니다.

솜털도 더 부슬부슬하고 찻잎도 큽니다.



운남성 백차의 솜털을 살펴보세요. 마치 어린 새의 털만큼 풍성합니다.




백차는 찻잎에 열을 가하거나(볶거나 찌는 등)

찻잎을 비비거나 찢는 등 변형 과정을 거치지 않습니다.

잎을 딴 상태 그대로 건조합니다.

가공을 거의 안하다보니


백차의 맛은 순수하고 맑습니다.



눈이 포근하게 내리는 날,
혹은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은 날
솜털이 보송한 백차를 추천합니다.


어린 고마코의 뺨에도 이렇게 하얀 솜털이 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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